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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살고 있다

안성 석남사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2021 한 해를 떠나보낼 준비와 함께 새 해를 맞이하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2021년이 끝나기 전 절에 가보기로 했다.

영광스럽게도 나의 2021년 마지막 방문지로 선정된 절은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석남사이다.

이제 30년째 뚜벅이인 나에게는 대중교통으로 갈 수있고,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곳이어야 했다...

목적지를 선정하던 중 알게 되었는데, 석남사는 2016년 방영된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이미 유명한 장소였다.

 

평소 출근시간보다 이른 아침 7시부터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석남사가 위치한 마을인 상촌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총 4대의 버스를 갈아탔고 대략 3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상촌마을에 가는 시내버스는 안성시의 인지사거리(인삼농협)에서 출발하는 100번 버스 단 한대인데,

하루에 13번 정도 운행하며 배차간격은 대략 1~2시간 정도이다.

그리고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는 버스 배차간격이 두 시간이나 되는 때가 있으니

혹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는거면 시간표를 미리 알고 가는 것이 현명하다.

나처럼 한시간 넘게 기다리고 싶지 않으면...

 

 

100번 버스의 회차지이기도 한 상촌마을에 하차하게 되면 슈퍼? 가 보이는데 그쪽으로 쭉 걸어가면 된다.

 

 

흐려서 햇빛이 전혀 없고 날씨로 쌀쌀한 편이었고 바람이 조금 불었다. 개추웠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가끔 마을주민 한 두명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얼음이 많이 얼어버려 차분해진 계곡소리가 분위기를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대략 1.7 km를 걸으면 석남사에 도착할 수 있다.

 

 

아주 깊은 산속도 높은 곳도 아닌, 적당한 곳에 자리잡은 석남사다.

계단 위에 위치한 대웅전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가 마음에 안정을 주었고, 간간히 스님의 목소리도 들렸다.

평일 오전이었지만 차를 타고 방문한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나만 솔로에 뚜벅이였다...

코로나19 때문에 여기도 방문 출입관리을 위해 안심콜을 해야 했다.

 

 

이 곳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드라마 <도깨비>에서 봤던 익숙한 계단이 보인다.

김 신(공유)이 풍등을 날렸던 장소이며,

저승사자이자 왕여였던 이동욱이 자신이 왕여임을 깨닫고 사색하던 중 공유가 찾아왔던 바로 그 장소이다.

 

 

대웅전 앞에서 사색하던 이동욱에게 공유가 찾아온 장면은 꽤나 임팩트 있는 장면이어서 

드라마를 봤다면 바로 생각나는 부분일 것이다.

 

 

 

바로 이 장면이다.

이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 속의 배경이다.

 

 

드라마에 나온 장면이어서 그런지 계단이 참으로 분위기 있는 느낌이다.

나도 계단 맨 위의 대웅전 앞에 서서 이동욱처럼 서있어 봤다.

  "그랬던가... 내가 왕여였던가. 기억없이 남은 감정은 내가 왕여인 걸 잊지 말라는 스스로 주는 벌이었던걸까."

 

 

산으로 둘러 쌓인 곳 치고는 꽤나 트여있는 느낌이다.

왕여가 사색의 장소로 이 곳 석남사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대웅전에는 스님이 불공을 드리고 있어 들어가지 못해 여기서라도 합장을 하고 기도를 했다.

한 쪽에는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였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도 있었다.

 

 

그리고 도깨비의 검을 그려놓은 곳도 있었다.

 

 

석남사를 거닐다 보니 도깨비의 OST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석남사에는 탑도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탑에 쓰여진 것은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내용이었다.

석남사는 마음의 평화뿐만 아니라 따뜻함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연말을 보낼 준비와 새해를 맞을 준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내 눈길을 이끄는 표지판을 만났다.

 

 

특별한 것 아니고 평소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천천히" 표지판이다.

연말을 떠나보내면서 사찰에 들렀다 돌아가는 길에 보는 천천히 표지판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하였다.

요즘 세상은 항상 누구보다 먼저, 많이, 빨리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끌려가듯 사회를 살아가는,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마지막 20대의 나에게 절이 마지막으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항상 압박감 속에서 살아갈 때 잠시 멈춰 쉴 시간조차 없다면,

때로는 천천히라도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른 길이 될 수 있다고.

천천히 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천천히 가면서 나 자신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져도 된다고.

천천히 가야할 때가 분명이 있을 거라고.

 

2021년을 떠나 보냄과 동시에 나는 나의 20대를 보내줘야 한다.

여태 매년 나이 드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깊은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서른 살이라는 나이를 맞이하게 되니 적잖이 착잡한 기분이 든다.

착잡한 이유는 아마도 내가 상상했던 서른 살이 아닌 내가 30대에 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0대, 20대 모두 방향이 정해진 기찻길을 따라가듯 끌려가는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내가 방향을 정하고 이끌어가보도록 해야겠다.

천천히 가더라도 괜찮을 것이다.